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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소리] 생명윤리와 자기결정권
2016-12-23 10:45:08
생명윤리와 자기결정권
                                                                                                                                                                              김현철 회장

  자유선진당 이영애 국회의원이 주최한 토론회가 ‘생명윤리와 자기결정권’이라는 주제로 10월 27일에 있었습니다. 최경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동일 한경대 법학부 교수,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내과계중환자실 실장 등 세 분의 발표가 있었는데 ‘자기결정권’이라는 윤리적 주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날 토론회를 통해 얻은 지식과 저의 생각을 모아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생명의료윤리의 영역에서 강조되는 자율성 존중의 원칙을 법적 규범으로 만들 때 자기결정권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자율성 존중의 원칙은 진정한 의미의 자율성 존중이 아니라 주관적인 자유의 존중으로 혼동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자율적인 선택과 자율적인 행동이 여러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사회에서 윤리적이고 법적인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자율적인 선택과 행동은 본인의 자발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이어야 합니다. 행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외부로부터의 지배적 영향이나 유인을 받지 않고 결정된 행동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 진정성을 지닌 행동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수행하기로 결정한 행동이 자신의 인생 계획과 일치되는 행동이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스스로의 가치관 주장에 있어서 모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셋째 효과적인 숙려 뒤에 결정한 행동이어야 합니다. 대안과 결과에 대한 고려와 평가를 충분히 한 후에 다른 대안이 분명히 없고 결과가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하다는 평가가 내려진 행동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넷째 도덕적 반영(moral reflection)이 수행된 후에 결정된 행동이어야 합니다.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나쁘다면 선택과 행동을 멈추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의 원칙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결정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자율성의 넷째 요소가 간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자율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주관적이고 무제한적인 자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패미니스트인 수잔 셔윈(Susan Sherwin)도 자율성이 가치를 가지려면 그것은 ‘관계적 자율성’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타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주장하는 개인주의적 모델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자율성은 순전히 개인적인 성취라기보다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라고 이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자기결정권을 생명의료윤리의 문제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도덕적 반영이 결여되어 있다면 매우 위험한 접근법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도덕적 반영을 포함한 자율성으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도덕적 반영을 수행한 결정과 행동이 본인에게는 바람직한 결정일 수는 있지만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한 윤리적 결정에 도달했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기결정권을 정당하고 적법하게 적용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자율성(自律性 autonomy)과 흔히 혼동하는 것은 자의성(恣意性 willfulness)입니다.
자의성이란 선택과 행동을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범죄를 결정했을 때 그의 판단을 자율적 결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의적 결정이고 이 결정은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도덕적 반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의성은 결코 관계적 자율성과 혼돈해서는 안 되는 개념입니다. 칸트는, 본성적인 도덕율에 의지하여 결정하는 것을 자율성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윤리는 타인이라는 대상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개념입니다. 본인의 자율성이 타인에게는 자의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이 정의되어야 합니다. 원래 자율성 원칙이 근대사회에서 강조된 것은 비대칭적 상황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언제나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헌법의 정신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타인이고, 누가 강자이며 누가 약자입니까? 타인에 대한 고려와 이해가 있으려면 인간생명의 시작과 끝을 정의해야 합니다. 국가는 헌법을 통해서 영유아와 소아를 보호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 태아는? 과연 한 번 생성된 인간의 생명이 기간제(期間制)일 수가 있습니까? 한 살짜리 영아는 소중한 사람이고 출산 전 임신 24주차 태아는 차별대우가 허용된 대상일 수 있습니까? 24주차 태아는 건드리면 안 되지만 12주차 태아는 건드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낙태를 선택한 사람들이 아무 생각이나 고민 없이 낙태를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즉, 자의(恣意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도덕적 고민을 한 후 결정한 자율(自律)이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어떤 행동이 자의적이었는지 자율적이었는지는 선택한 행동이 무엇인가로 구분되는 것이지 행동하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느낌을 가졌는지로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했더라도, 아무리 연민과 자책의 감정을 느꼈더라도 결국 낙태를 해서 한 생명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자의적인 행동이지 자율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자기결정권이라는 것은 타인의 생명이나 자신의 생명까지도 해치지 않을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봉건주의시대를 벗어나 근대사회로 건너오면서 자율성, 또는 자기결정권을 논의하게 된 출발점은 약자가 강자에 의해 억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함이었는데 현대사회에 들어서서 자기결정권 논의의 진행은 도리어 살인을 정당화하는 변명 만들기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타인의 자기결정권이 당신의 생명이나 인생계획에 지대한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그런 권리를 허용할 생각이 있습니까? 아무도 허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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